[비담덕만유신] 늑대에게 입맞춤을
달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어둠의 잠긴 세상은 고요한 듯 싶었다. 하
지만,세상에는 인간이 살고 있었고 그들에게 불이 있었다. 그래서 인
간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다. 모두 잠이 들었다면,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
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빌어먹을 일따위 없었을 것이다.
털석 -
상처를 입은 늑대 한 마리가 고통으로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처참하
게 쓰러져 있다. 커다란 몸이 피로 범벅이다. 이제 끝이 구나 하는 순
간 누군가 다가온다. 사람이다. 감히 사람이 나의 곁으로 왔다. 본능
적으로 털이 삐죽삐죽 서기 시작했다. 힘이 들고 온 몸이 아팠지만
참아냈다.
살아남기 위해.
으르릉-
남은 힘을 짜내 으르릉 거리니 사람의 따스한 온기가 다가온다. 오지
마,오지마 그렇게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감히 겁도 없이 늑대에게 다
가온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의 손길은 이내 늑대의 털을 부드
럽게 매만진다.
으르릉 -
다시 한번 으르릉 거리는데 역시나 털을 매만지는 부드러운 손길. 정신
을 잃으려는 찰나 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소녀. 작고 연약
한 소녀다. 비담은 힘겨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여전히 소녀의 손길이
느껴진다.
소녀는 겁도 없이 덥썩,늑대를 껴안았다.
" 아파? 아픈거야? "
" .......... "
" 아프면 말해,내가 도와줄게. 아프지마. "
" ...... "
" 정말이야,괜찮아 늑대야. "
늑대를 껴안은 소녀는 엉엉 울었다.
소녀의 이름은 덕만.
늑대의 이름은 비담.
*
킁킁킁.
비담의 검은 코가 씰룩 거린다.
분명 여기였는데 공주님의 향기로운 분내가 나는 곳이. 여기,이 근처
에서 그 냄새가 사라졌다. 큰일이다. 시간도 많이 지체됐지만 공주님
의 평소 체력으로 볼때 지쳤을 것이다. 그리고 어둠이 깔리면 매우 위
험하다. 걱정이 됐다. 하,정말 여러가지로 꼬이고 말았다.
빌어먹을 무뢰배들.
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
사악 입꼬리를 올리는 비담. 어둠 속에 잠긴 검은 숲은 스산한데 그 속
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공주님이 기다리고 있다. 날 부르고 있어. 이
내 사라지는 비담. 그가 사라지고 남은 곳에는 허무한 남은 바람만이
남아 흔들린다.
" 늑대,늑대 입니다 유신랑 "
갑자기 사라진 공주를 찾아 어둠속에 잠긴 숲을 살피는 화랑과 낭도들.
서라벌 십이화랑 중 하나인 용화향도의 김유신과 그 낭도들이다. 그런
데 대뜸 낭도 하나가 외치자 모두가 놀라 서로를 바라본다. 늑대.....?
설마 그 늑대가......?
" 느....늑대가 방금 숲 안쪽으로 달려갔습니다! "
비담이다. 미실새주의 아들,태어나자 마자 버림받고 지독한 주술로 늑
대 인간이 돼어 버린 그. 그가 결국 나서야고야 말았다.
유신은 다급히 낭도가 가리키는 쪽으로 내달렸다. 비담에게 공주님을
빼앗길 수 없다. 미실의 말 그대로 라면 끝장이다. 처음엔 반신반의 했
다. 그러다 깨달았다. 미실새주의 말이 거짓부렁이 아니라는 것을. 똑
똑히 보았다. 공주의 치마 아래서 치맛자락으로 장난을 치며 두 눈을
빛내던 비담. 그 지독한 욕망을.
*
" 비다암~! 나왔어! "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자연스레 늑대로 변하는 비담. 그에게 찾아온 손
님은 늘 그렇듯 공주 덕만.
" ...... "
그러나 그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그. 그러다 덕만은 따스히 대해주었
다. 하지만 흠칫 흠칫 놀라는 몸은 숨길 수 없었다.
" 여기 있으면 안돼,이리나와 응? "
생글생글 거리며 잘도 웃는다. 금새 어린애 처럼 히~! 하고 웃음 소리
까지 내며 비담의 품으로 파고든다. 부끄럽다. 온몸이 불타 오르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몸을 움츠렸다. 공주의 고운 분내가 비담의 코를 간지
른다.
" 맛있는 거 챙겨 왔어! 연회에 왜 안 왔어? 정말 재밌었는데!!! "
" .......... "
" 비담도 왔으면 좋았을 걸. 정말이야! "
- ......재미.....있었습니까?
" 와,대답한거야? 신난다! 대답했어,나한테! "
- 송구합니다,공주님
" 아냐,괜찮아. "
*
늑대는 덕만의 처소로 옮겨졌다. 소화는 덕만을 말렸지만 덕만은 불쌍
한 늑대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버려지듯 땅에서 신음하던 모습이 아
직도 덕만,그녀의 눈앞에 생생하다.
꺄아악!!!!
비명을 내지른 덕만은 바들바들 떨었다. 늑대가 인간이 돼었다. 그것도
맨몸이야.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인기척이 났
다. 늑대에서 인간으로 변한 사내가 일어섰다. 대충 몸에 이불자락을 걸
친 사내는 묵묵히 걸음을 뗐다. 그러나 이내 고통으로 신음하며 쓰러진
다. 덕만은 놀라서 사내에게로 총총총 다가갔다.
" 괘....괜찮아요? "
" ....... "
" 그게 상처가.........어? "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며 조심하라 이르던 덕만의 얼굴이 굳어 버린다.
이내 사내의 얼굴에 손을 내민다. 야윈 뺨을 쓸어 내리면 사내가 파르
르 떤다. 많이 아픈 건가. 걱정스런 덕만이 아랫 입술을 깨물며 이마에
머무른 손을 토닥토닥. 괜찮아,괜찮아 하고 말한다.
" 의원을 불러올게,비담 기다려 응? "
덕만이 몸을 일으키는데 훽 누군가 덕만을 잡는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
면 비담이 겨우 덕만의 손목을 잡고 있다.
" 그....그러지마........"
" .....아프잖아? 그치? "
" ...... "
" 그럼 의원에게 몸을 보여야돼. "
정신을 잃은 비담의 손이 툭 떨어지자 덕만이 가만히 정신을 잃은 비
담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처소에 홀로 남게 됀 비담의 고통이 또다시
시작 됀다.
*
커다란 몸. 검은 털. 황금색 바탕에 검은 눈동자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무시무시한 이빨. 무지한 맹수가 따로 없는 외모다. 미실의 도움으로
마음대로 변할 수 있음에도 밤이면 어김없이 맹수의 모습을 지우지 않
았다. 그에게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섭다. 위험하다.
다들 그리 말했다. 그런데 덕만은 처음 한번 놀랜 것을 빼면 늘 웃으며
비담을 대했다. 끼니를 거를때 마다 밥을 챙겨주고 짬이 나면 산채를 청
소한다던지 하는 집안일을 도와주고 말동무도 되어 주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 따위 신경을 끄고 고독한 비담을 달래 주었다.
*
늑대의 몸을 한 비담이 우울한 얼굴로 산채 바닥에 엎드려 누워있다.
꼬리도 양쪽 귀도 모두 내린 채 우울한 얼굴로 하염없이 문을 빤히 바
라본다.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뭐 그 누구누구는 보나마나 당연
했지만 오늘따라 늦는다. 밤의 손님이. 우울하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
로 나온다.
그런데 순간 비담의 귀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발소리. 익
숙한 내음. 비담이 몸을 일어선다. 가슴이 설레인다. 미소가 지어진다.
양쪽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킁킁 거리던 비담이 꼬리를 살랑인다. 왔다,
드디어 손님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마자 비담은 반가운 표정을 싹 지우고 낮게 말했다. 순간,
화가 났었다. 기다리는 걸 뻔히 알면서,왜 늦는 건지 심통이 났다.
- 늦으셨습니다.
"어머,미안. "
덕만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비담을 끌어 안았다. 검은 털을 한 손으
로 쓸어 내린다. 침상에 앉아 비담의 몸에 자연스레 몸을 기댄 채 씨익
웃어 보이는 덕만. 오늘도 건강한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 하다.
*
향긋한 차를 두고 사내와 여인이 앉아 있다. 중요한 애길 하는 것 같다.
" 몸은 괜찮아? "
" 예,괜찮습니다. "
" 다행이다. "
다시 공주궁. 전의 모습은 어디가고 무뚝뚝한 얼굴로 앉은 비담의 앞에
걱정스런 얼굴의 덕만이 앉아 있다. 물론 비담의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
지 않는다. 다만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왔다. 그런데 그건 이곳으로 불려
온 핑계일 뿐이다. 덕만이 억지로 오라고 해서 왔다.
아,귀찮아.
비담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쓰여져 있다.
감히 일국의 공주의 앞에서 말이다.
그러나 덕만은 비담의 걱정 뿐이다. 괜찮은지 더 아픈 곳은 없는 지.
비담의 성정은 알고 있으니 무시하는 것 따위 괜찮다. 원래 사람이 무
시하건 말건 그 사람이 괜찮은지 않은 지가 더 중했던 덕만이다.
이런 걱정,익숙하지 않다. 누군가 저를 걱정해준 적이 없다. 비담의 눈
엔 덕만이 가식적으로 보였다.
" 내가 그렇게 가식적으로 보여? "
차를 마시려 찻잔을 들던 비담이 멈칫. 덕만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
다. 그렇다면 미안해 라고 말하고는 찻잔을 들어 차를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냥 궁금했다고,걱정됐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비담이 놀란 눈으로 덕만을 쳐다본다. 덕만은 아무렇지 않았다.
새삼스레 덕만을 쳐다 본 비담에게 날아온 것은 덕만의 잔소리. 찻잔을 앞
에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시작한 덕만,제 몸을 귀히 여기지 않는
비담의 버릇을 고쳐 놓을까 생각중이다.
그날 늑대의 몸엔 상처 자국이 많았다. 아니 물론 비담의 몸이다. 지금은 깔
끔한 화랑의 정복을 입고 있으나 결국 그 몸엔 상처 자국이 가득할 것이다.
비담의 성정으로 곱게 살진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더 걱정이 돼었다.
"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
" ..... "
" 네가 가식적으로 느꼈다면,그런 것이겠지. 상관하지 않아. "
" ....... "
" 하지만 제 몸을 중히 여기지 않는 건 용납못해,꼬박꼬박 탕약 먹어. "
" ..... "
" 잠도 자고 밥도 꼭 챙기고 무리 하지마. "
" ........ "
" 말 들어. 안 들으면 혼내줄꺼야! "
비담이 피식 웃는다.
태어나 처음으로,누군가의 앞에서.
*
덕만의 부드러운 손길에 금세 양귀를 접고 몸을 말드는 비담. 기분좋게
으르렁 거린다. 그러면덕만의 입술이 다가와 쪽,입술도장을 찍는다. 요
즘 들어 애정표현이 과감해진 공주님.비담은 덕만을 말리지 않았다. 미
소 지으며 그저 지켜볼 뿐. 오히려 즐기고 있다. 덕만이라며 그저 좋다.
무조건 좋다. 그냥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 오늘 힘들지 않았어? 비재 말이야. "
-별루요,힘들지 않았습니다
" 다른 화랑들은 힘들다,힘들다 난리인데...역시 비담이야! 근데 정말
괜찮은거야? 응? 솔직히 말해!!!! "
- 전 보통 몸이 아니니까요,괜찮습니다
" 흐응~ 그래도 난 네가 걱정이야,비담. "
- 별 소릴 다하십니다
비담의 말에 걱정스런 표정의 덕만이 까르르 웃는다. 그래,넌 특별해.
비담의 커다란 몸에 기댄 채 덕만이 말했다. 비담의 입에 미소가 걸린
다. 덕만은 눈은 감았다. 비담의 온기가 전해져 나른한 기분이다.
" 요즘 조금 추워졌어. "
- 몸 조심하소서
" 아니,나 말고 너,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
- 그리 걱정돼십니까?
" 응,아주 많이. "
- ....
" 아프지마,넌 아프면 안돼. "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 여기는 것을 특별하다 생각하고 있다. 신라 사람
들 중에 늑대에게 다정한 것은 자산만이 유일한 게 이유가 아니다. 정
말 덕만,그녀에게 비담은 특별했다. 생김새는 무시무시하지만,뭐 비담
의 것이니 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존재 자체가 특별했다.
말도 마음도 통해 종종 속으로 놀라워 하곤 했다. 생각보다 푹 빠져 있
는 듯 했다. 스스로도 너무나 우수울 정도로. 바람 같기도,또 어느 때는
흐르는 강물 같기도,또 어느 때는 사나운 맹수. 이제것 듣도 보도 못한
사내.
외로움을 아픈 마픔을 달래주고 싶었다. 품어주고 싶었다. 그러면 나아
질까. 안아 주고 싶었다. 모두 다 치유해 주고 싶은 마음에 그 앞에서
한없이 자애로워 졌다. 신기하다.
- 비재 결과가 마음에 드십니까?
" 응! "
신이 났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난걸까. 공주님의 대답이 오늘따라 낭랑하
다.피식,또 웃고 말았다.
- 다행입니다
그러나 비담은 내색하지 않았다.
" 비담랑은 신국 최고의 화랑이야. "
- 제가 그렇습니까?
뭘 더 물어보는냔 표정을 짓는 덕만에 비담은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
다, 덕만이 품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신년맞이 비재가 있었다. 물론 최종 우승자는 무명지도의 비담. 그는
신국 최고의 화랑이였으나,저주 받은 몸이라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전엔 그저 시큰둥 했었다. 삶의 의욕조차 없었으니까,지금은 다르다.
죽을 힘을 다해 맞서 싸웠다. 덕만을 위해.
치명적 결함은 불편하기만 할뿐,덕만도 개의치 않았지만 예전처럼 대
충대충 할 수 없었다. 덕만의 신국의 공주였다. 그것도 성골.
그런 그녀에게 걸맞는 사내가 되어야 했다.
" 부드러워. "
비담의 길고 고운 털은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덕만이 늘 빗으로 손질
하고 매만져 주었으니 오죽할까. 목욕도 덕만이 시켜주곤 했다. 그때
마다 덕만은 감탄했다. 이 검고 긴 털을 쓸어내리며.
" 비단결 같아 "
- 공주님 머릿결만 하겠습니까?
" 어머,칭찬은 "
- 참이옵니다 전 공주님의 머릿결이 좋습니다
흐흥,귀여운 콧소리와 함께 덕만이 다시 비담의 품에 파고든다. 다시 한
번 낮게 으르렁 거리는 비담이 꼬리를 흔들자 덕만이 푸하하 웃음을 터
뜨린다.
*
숲속을 미친듯이 달리던 유신이 멈춰 돌처럼 굳은 채로 숲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앞에 피투성이의 사람이 서 있다. 다친 것은 아니고
치열한 싸움을 한듯 보였다.
" 유신랑? "
" ..... "
" 왜 그러십니까요? "
" ...... "
낭도들이 그를 불렀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비담. 사람의 모습으로 기절한 채 몸을 축 늘어뜨린 덕만을 안고 있었
다. 유신이 한발 느렸고 비담이 한발 빨랐다. 감히 신국의 공주를 납치
한 일당들은 처참히 비담의 뒤에서 전부 도륙당한 채 쓰러져 있다.
구했다. 공주님을.
다행이긴 했지만 여전히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 뭐 별 영양가 없는 무뢰배들이네,이제 가세. "
" ........자네 짓인가? "
" 감히,신국의 공주님을 해치려 했던 자들이야. 구족을 멸해도 성치
않네. 그런데 무슨 그런..... "
" 공주님을 이리주게,내가 모셔갈것이네. "
유신의 단호한 말에 비담이 조소를 지었다. 네가? 헛웃음이 나왔다. 이
런 애절한 마음인지는 몰랐는데. 하지만 덕만을 내어줄 생각따위 없었
다. 덕만이 어떤 사람인데. 감히 내준단 말인가.
" 싫은데? "
" ...... "
" 공주님은 내가 모셔가지. 자네는 이 잔당들을 처리하고 모두에게 알려,
공주께서 무사하시니 걱정일랑 말라고. "
' 비담,그 자를 조심해야 할것입니다. '
" 자네가 할일은 그거니까 공주님한테서 신경 끄게. "
' 늑대란 원래 가차 없는 동물입니다. '
" 자네 따위 신경 쓸 겨를 없다네. 가장 중한 것이 바로 공주님의 안위
아니겠는가? "
' 잔혹한 성미로 뭐든 닥치는 대로 물어 뜯는 게 늑대라지요. '
" 그러기엔 내가 너무 여유가 없거든. "
' 여유가 없어서 그런다나 뭐라나. '
" 그러니까 공주님 건들지마,난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야. "
' 죽이지 않으면 죽이려 드는 게,바로 비담 입니다. '
"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는가. "
청유. 공주의 탄신일을 앞두고 황제의 권유로 갑작스레 오게 됀 청유.
그 청유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끔찍하게 끝이 난 것이 비담은 맘에 들
지 않았다. 깨어나면 공주는 두려움에 떨것이다. 여리고 약한 사람이
얼마나 놀랐을까. 아직도 생각하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대뜸 끼어드는 김유신이라니. 꼴사나워 당장 달려들어 반쯤 죽
여 패놓고 싶었다. 아니,물어 뜯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공주님이 걱
정할것이다. 살생을 원치 않는 공주.
" 비담랑! "
" 아,드디어 도착했군. 그럼 이만 실례하지. "
무명지도의 낭도들이 모두 도착하자비담은 덕만은 안고 그 자리를 떴
다. 무명지도의 호위를 받으며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유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한참이나 서 있었다. 잔혹한 살기가 아직
도 생생하다. 패배감,낭패감,그리고 두려움이 앞섰다. 비담을 마주하
면 늘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날이 서듯 일렁이는 그 살기.
비담과 있으면 괜히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 ......모두 시체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빨리 여기를 빠져 나간다. "
" 예,유신랑 "
처음 늑대인 비담을 신경쓰게 됀 날이 생각난다. 원래는 쳐다도 보지 않
았다. 비담이란 존재는 그저 일개 화랑일뿐이였다.
그 날은 정말 평범한 날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검술을 연습하고 하루
의 일과를 시작했다. 낭도들을 훈련시키고 화랑의 집무를 보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덕만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화랑의 일을 상의했다.
그런데 대뜸 덕만의 처소에 웬 커다란 늑대 한 마리가 공주궁 처소 바
닥에 배를 깔고 누워 덕만의 치마자락 아래서 장난을 치고 노는 것이
아니겠는가. 놀라서 이게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덕만은 싱그러운 웃
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늑대 입니다 하고.
설마 그게 비담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덕만은 공주이고 여인이
다. 그러니 거기에 비담이 있을 이유는 없었다.
늑대는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덕만은 굴하지 않았다. 물론 늑대도,
아니 비담도. 날카로운 울음 소릴 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덕만이 걱
정스레 괜찮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
다. 유신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내 조소를 지어 보이던 비담
이 눈을 빛내다가 그만두었다. 덕만의 손이 비담의 털을 간질였기때문
이다.
' 비담,갑자기 왜 그래? 기분 안좋아? 응? '
' - 아닙니다 '
' 흐흥~ 다행이다. '
' - 전 괜찮습니다 공주님 '
원래부터 그랬던 것 처럼 덕만의 곁에 있는 비담의 모습은 매우 나른
하고 평화로웠다. 그 모습이 유신은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리고 미실
에게서 듣게 됐다. 비담의 실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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